개신교는 성체없이 성경과 성령만으로
얼마나 충만한가.
하지만 성체가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문제다.
그저 “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” 쯤으로 만들만큼,
성체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.
개신교의 눈에는
그저 아무것도 아닌 빵 조각처럼 보이겠지만,
지금 상황은 “개신교가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위치”와
“개신교의 종교의 당당함”을 드러낼 수 있는 때가
전혀 아니다.
그렇다. 그 이유는 이렇다.
개신교에서 악신을 이기지 못했고,
천주교에서 악신을 대적할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.
그렇게 내노라하던 위풍당당하던 개신교에서
그러한 사람과 힘이 있는게 아니라,
오히려 개신교입장에서는,
그렇게 보잘 것 없게 여겼던 천주교에서 나왔으므로,
상황이 엄청나게 개신교에게는
불리한 상황으로 전개되었다.
천주교의 “성체”를 모시는 것에 대한 중요성과,
그저 한 덩어리의 빵 조각일 뿐이라는 것은,
그저 개신교의 생각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.
사실은 전혀 빵조각이 아니었다는 사실은,
교황님과 사제들이
왜 그리도 성체를 함부로 다루지 않는지에 대해,
진중하게 알아보아야 할 필요성이 엄청나게 대두되었다.
게다가 오히려 사제의 목숨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김과 동시에
성체가 땅에 버려져 먼지에 뒹굴고, 습기에 젖어 있어도,
사제는 그것을 다시 입에 넣고 목에 넘기는지에 대하여,
조금이라도 안다면,
“성경”과 “성체”와 성령“ 셋 다 가지고 있는 천주교와,
오직 ”성경과 성령의 힘“ 두가지 의 힘만으로도,
엄청난 신자수라는 거대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개신교와의 차이점은,
이제는 알 수 있다.
천주교에서는
방언의 중요성과
성령에 대하여 쉬쉬하려는 태도가
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을까. 하는
나름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.
오직 성경과 성령 두가지만 있는
개신교에서의 악신에 대적하는, 아니 악신에게 대적할 수 있는 힘의 크기가
왜 이리도 천주교에서는 이리도
셀 수가 있는지를 꼭 알아야만 하게,
되었다는 것도,
개신교에서는, 가톨릭에서의 성체란
꼭 자세히 알아야 하는 관심대상일 뿐만 아니라,
반박할 수 없고 부인할 수 없는
성체란 예수님의 몸이라는 사실은
개신교입장에서는,
”진짜 사실“일 수도 있는 것으로 가정할 수 있게 되었다.
”다시 묻는다. 개신교에서는 왜 악신을 대적할 수 없었는가.“